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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의 중국정복과 지배제도

by (ꔷ̥̑.̮ꔷ̥̑)🥺ྀི( ͒_̓ ͒ )—̳͟͞ 2023. 2. 4.

중국 대륙의 마지막 왕조로 명나라의 세력이 약해지자 만주의 여진족인 누르하치가 부족세력을 통합하여 후금을 세우고,이자성에 의해 세워진 대순국을 멸망시키고 진정한 중국의 주인이 되는 청나라의 중국정복과정과 지배제도를 알아보자

 

청나라의 중국정복

누르하지가 여진족을 통합하여 후금을 세우고, 뒤를 이은 2대 황제 홍타이지는 몽골과 명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조선을 공략하고 굴복시키고 나라의 이름을 청나라로 바꾸었다. 청나라는 팔기제를 통해 양성한 강력한 군사를 바탕으로 명나라가 멸망한 이후 베이징을 점령하여 수도로 삼았다. 이후 청나라는 투항한 한족의 협력을 얻어내면서 장기간의 정복전쟁을 통해 명나라보다 넓은 영토을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청나라의 4대 황제 강희제 때에는 오삼계 등이 일으킨 삼번의 난을 진압하고 타이완의 반청세력을 제압하였으며, 시베리에 진출한 러시아와 네르친스크 조약을 통해 국경을 확정하였다. 이렇게 강희제는 국가의 재정적, 내정적으로 안정을 시켜 태평성대를 이루는데 기초를 다진 청나라의 최고 황제로 평가하고 있다.

 

다민족 제국의 건설

제6대 황제 건륭제에 이르러 청나라는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장기적인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주변지역에 대한 정복전쟁도 계속하여 티베트와 신장, 몽골 등을 포함한 오늘날 중국 영토의 대부분을 이 시기에 확보하였다. 이를 통해 청나라는 만주족과 몽골족 이외 다수의 한족과 다양한 소수 민족을 포함하는 다민족의 대제국을 건설 할 수 있었다. 만주족의 우위를 전제로 한 청나라는 직할지에서는 군현제를 통해 한족을 직접 지배하고 티베트, 몽골, 신장 등의 주변부와 소수 민족에 대해서는 토착 지배 지를 이용하는 간접 지배방식을 채택하였다. 청나라는 동아시아나 동남아시아의 주변국들과 전통적인 조공, 책봉 체제를 강화함으로 동아시아의 질서를 주도하였다.

 

청나라의 중국지배

소수 민족인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다른 중국의 한족에 대한 강경책과 회유책을 적절히 사용하여 압도적으로 많은 민족인 한족을 다스렸다, 청나라는 만주족의 머리형태인 변발을 강요하고, 한족 지식인의 저항을 억누르기 위해 특정한 문자, 용어, 어구, 문구등을 사용하는 사상을 탄압하였다. 그러나 일부 고위 관직은 한족 출신을 임명하였고, 전통적 유교 문화를 존중하고 과거제를 통해 산사층을 포섭함으로써 한족의 협조를 얻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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