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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서아시아 세계의 탄생과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발전

by (ꔷ̥̑.̮ꔷ̥̑)🥺ྀི( ͒_̓ ͒ )—̳͟͞ 2023. 2. 4.

고대 서아시아 세계의 탄생과정, 정치, 문화적 배경을 알아보며 정복왕국인 아시리아, 페르사이, 페르티아 제국은 방대한 영토를 어떻게 영토를 통일하였고, 통일 이후 넓은 영토를 지배할 수 있었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아시리아의 서아시아 통일

티그리스강 유역의 작은 도시국가에서 출발한 아시리아는 강력한 기마 전술과 철제무기, 전차를 앞세워 서아시아 세계의 상당 부분을 통일할 수 있었다. 아시리아는 도로와 역전제를 정비하여 전국의 영토를 주로 나누고 총독을 파견하여 직접 통치하는 등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하였다. 제국의 곳곳에 거대한 지구라트를 건설하였고, 수도 니네베의 왕궁에는 각지에 파견된 학자들이 수집해 온 많은 책을 수납하는 왕립 도서관을 세워 학문을 크게 발전하였다. 그러나 피정복민을 강제 이주시키고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는 등 강압적인 통치로 각지에서는 반란이 이 일어나 국력이 쇠약해져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발전

기원전 6세기 중엽 페르시아의 키루스왕이 아케메네스 왕조를 수립하고 분열된 서아시아 세계를 다시 통일하였다. 다리우스 1세는 이집트와 지중해 연안에서부터 인더스강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여 왕조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다리우스 1세는 20개의 주에 총독을 파견하고 "왕의 눈", "왕의 귀"라고 불리는 감찰관을 보내어 총독을 관리/감독하였다. 또한 "왕의 길"이라 불리는 도로와 역참제를 정비하고, 화폐 및 도량형 제도를 정비하여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하였다. 페르시아는 아시리아와는 달리 정복한 피지배 민족들에게 관용을 베출어 약 200년 동안 페르시아 왕조는 통일과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지중해 해상권 장악을 둘러싸고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패배와 지방 총독들의 반란까지 일으키며 점차 국력은 약해져, 결과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에게 정복당하면서 멸망하였다.

 

파르티아의 번영

알렉산드로스 제국이 분열된 후 제국의 서쪽은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갔지만, 동쪽에서는 이란계통의 종족이 세력을 키웠다. 파르티아는 페르시아어와 문자를 사용하는 등 아케메네스 왕조는 페르시아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기원전 2세기경 파르티아는 전성기를 맞이하여 메소포타미아에서 인더스강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파르티아는 페르시아와 정복지 주민들을 관대하게 통치하였다. 또한 동서양 무역로를 장악하여 중계무역으로 번영하였으나, 로마제국과 인도의 쿠샨왕조 등과의 경쟁으로 국력은 쇠약해지다 결국 3세기 사산 왕조 페르시아에 멸망하였다.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발전

3세기초 이란계통의 농경민이 세운 사산 왕조 페르시아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부흥을 내걸고 메소포타미아에서 인더스강에 이른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이 과정에서 로마와 경재하여 영토와 세력을 키워 나갔다. 사산 왕조 페르시아는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정하고 페르시아어를 공용어로 사용하였으며, 지방에 총독을 파견하여 중앙정부의 집권 체제를 확립하였다. 파르티아와 같이 동서양 교역로를 차지하여 중계무역을 하여 번영하였다. 그러나 비잔티움제국과의 계속된 전쟁과 왕실의 내분으로 국력은 계속하여 쇠약해져 7세기 중엽 이슬람 세력에 의해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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